세계 테니스계를 양분하는 두 조직, ATP와 PTPA의 갈등은 단순한 운영 방식의 차이를 넘어, '스포츠 조직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ATP는 수십 년간 테니스 산업의 중심을 차지해온 전통의 기구이고, PTPA는 노박 조코비치와 바셀 포스피실이 중심이 되어 출범한 비교적 신생 조직입니다. 하지만 PTPA의 등장은 단순한 대안의 등장이라기보다는, 기존 체제에 대한 강력한 도전이며, 선수 권익 중심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움직임입니다. 이 글에서는 두 조직의 설립 배경, 구조, 운영 방식, 그리고 선수에 대한 기여도를 비교하여 과연 어떤 조직이 진정한 의미에서 '선수를 위한 조직'인지에 대해 심층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ATP: 전통과 권력을 기반으로 한 산업 중심 조직
ATP(Association of Tennis Professionals)는 1972년에 설립되어, 1990년부터 ATP 투어를 본격 운영하며 글로벌 테니스 산업을 주도해왔습니다. 현재 ATP는 남자 테니스 투어, 랭킹 시스템, 상금 분배, 경기 일정 조율 등을 담당하며 사실상 테니스계의 행정 기구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ATP 투어는 각국에서 열리는 250, 500, 마스터스 1000 시리즈 및 그랜드슬램을 연결하며, 전 세계 테니스 선수들의 주요 무대입니다.
ATP는 표면적으로는 선수 대표와 대회 대표가 함께 이사회를 구성하는 '공동 거버넌스 모델'을 채택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대회 주최자 및 스폰서 측의 이해가 더 강하게 작용하는 구조라는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특히 중하위권 선수들은 자신의 의견을 조직 운영에 반영하기 어렵고, 상금이나 복지 측면에서도 소외되고 있다는 불만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그랜드슬램에서조차 예선 탈락자나 1~2회전 탈락자의 수익은 전체 운영 수익 대비 극히 적으며, 챌린저급 이하에서는 숙소, 식사, 의료 지원 등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또한, ATP의 의사결정 과정은 폐쇄적이라는 지적이 있습니다. 주요 정책이나 결정사항이 일부 고위직에 의해 좌우되는 경우가 많고, 선수들의 집단적 목소리를 제도적으로 수용할 구조가 부족합니다. 이러한 한계는 특히 젊은 세대 선수들이 겪는 정신 건강 문제, 경기 외 압박 요소, 그리고 커리어 이후 삶에 대한 준비 부족 등에서 그대로 드러납니다.
PTPA: 선수 권익을 위한 새로운 실험
PTPA(Professional Tennis Players Association)는 2020년 출범한 비영리 단체로, 노박 조코비치와 바셀 포스피실이 공동 창립했습니다. 기존 ATP 체제에서 선수 권익이 후순위로 밀려나는 현실을 극복하고자 시작된 이 조직은 ‘진짜로 선수만을 위한 조직’을 표방합니다. 특히 성별, 국적, 랭킹에 관계없이 모든 선수가 동등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설계된 구조가 핵심입니다.
PTPA는 조직 초기부터 투명성, 독립성, 공정성을 핵심 가치로 내세우며, 기존 시스템의 보완이 아닌 대체를 목표로 활동해왔습니다. 이 조직은 단순히 권리를 주장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문제 해결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팬데믹 기간 중 소득이 끊긴 중하위권 선수들을 위한 긴급 지원 펀드를 추진했고, 부당 계약이나 후원 강요, 경기 외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선수들을 위한 법률 상담 및 심리 상담 프로그램을 제공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PTPA는 선수들의 커리어 이후 삶까지 고려하고 있습니다. 은퇴 이후 경제적 자립이 어려운 선수들을 위해 재교육, 멘토링, 경력 전환 컨설팅 등을 논의 중이며, 실제로 몇몇 파일럿 프로그램이 시작된 상태입니다. 이는 단순한 스포츠 조직이 아니라 ‘선수의 전 생애를 설계하는 파트너’로서의 역할을 지향하는 모습입니다. 점차 PTPA는 젊은 선수들과 여성 선수들 사이에서 큰 호응을 얻고 있으며, 이는 기존 ATP 체계가 담아내지 못했던 다양한 목소리들을 조직화하는 데 성공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누가 진짜 선수 중심인가? 실제 영향력과 비전의 비교
ATP와 PTPA를 단순 비교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ATP는 수십 년간 구축한 제도와 네트워크, 그리고 글로벌 대회 운영 경험이라는 강점을 갖고 있습니다. 반면 PTPA는 새로운 접근과 민감한 문제에 적극 대응하는 기동성을 무기로 점차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두 조직의 비교는 현재의 실질적 영향력보다도 '누가 더 선수 개인에게 가까운가', '누가 더 미래 지향적인가'라는 기준에서 판단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PTPA는 아직 ATP처럼 공식 랭킹 시스템을 운영하지 않으며, 대회 주최 능력도 갖추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명확히 말합니다. "우리는 경기 운영자가 아니라, 선수 보호자이다." 이 말처럼, PTPA는 스포츠 비즈니스보다는 스포츠 인권, 공정한 분배, 건강한 생태계를 우선시합니다. 특히 중하위권 선수, 신인 선수, 은퇴 선수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활동은 ATP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실용적이라는 평가가 많습니다.
더 나아가 PTPA는 선수 중심 스포츠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스포츠 조직이 위계적이고, 후원자나 방송사 등의 이해에 좌우되던 운영 방식에서 벗어나, 선수 집단의 자율성과 연대를 기반으로 한 '플랫(flat) 구조'를 실험 중입니다. 이는 향후 축구, 농구, 골프 등 다른 종목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스포츠 거버넌스 혁신의 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ATP와 PTPA의 갈등은 단순한 경쟁 구도가 아닙니다. 이는 '선수'를 중심에 두는 조직이 어떤 방식으로 구현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철학적 논쟁이며, 스포츠 산업이 어떤 방향으로 진화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정표입니다. 선수 개인이 단순히 대회 출전자에서 벗어나 한 조직의 주체로 존중받을 수 있는 구조, 그것이 PTPA가 지향하는 진짜 변화입니다.
결론적으로 현재 시점에서는 ATP가 실질적인 권한을 보유하고 있지만, PTPA는 ‘선수 중심 시대’를 여는 주춧돌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향후 양 조직이 협력하거나, 보다 건강한 긴장 관계를 통해 테니스계에 긍정적인 구조 개혁을 이끌어내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일 것입니다. 진정한 ‘선수 중심 조직’은 단지 구호가 아닌, 선수의 삶에 실질적 영향을 미치는 구조로 나타나야 하며, PTPA는 그 가능성을 가장 가까이서 실현 중입니다.